금호아시아나, 재앙을 초래한 탐욕
기업

지난해 12월 30일 김영기 수석부행장(왼쪽)과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이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오늘은 금호아시아나 그룹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다 아실 겁니다. 전문용어를 논외로 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한 탓에 탈이 난 겁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승자의 저주’(외부에서 돈을 빌려 높은 가격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가 상환 부담으로 기업 전체가 위험해지는 현상) 라는 표현을 쓰죠.
저는 구조조정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기사들이 풋백옵션, 재무적 투자자(FI), 전략적 투자자(SI), 사모펀드(PEF) 등 각종 자본시장 용어로 점철된 까닭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제대로 따라오진 못한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이런 분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목적에서 쓰는 거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금호아시아나, 왜 대우건설을 인수했나?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3년 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피나는 구조조정을 마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건설’이었죠.
당시 박삼구 회장이 사내 게시판에 띄운 글을 보시면 금호가 당시 어떤 비전을 세우고 있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석유화학과 금융을 기반으로 건설을 주력 업종으로 키우고, 항공과 타이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며, 물류와 레저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
이 때 시장에 나온 대우건설은 마치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습니다. 금호산업이 건설 부문 시공능력 9위였던 반면 대우건설은 2위였습니다.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금호는 단숨에 건설업계 1위가 될 수 있었죠. 그룹 순위도 11위에서 8위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물론 당시 생각이었죠)
이런 이유로 금호는 사실상 그룹의 명운을 걸고 인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박 회장은 “현금 2조 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두산, 유진 등과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인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결국 금호는 6조4255억 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하게 됩니다. (덕분에 대우건설을 매각한 한국자산관리공사는 투입한 돈의 5배를 벌었습니다) 금호는 내친 김에 물류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대한통운까지 인수했죠.

2. 금호아시아나, 어떻게 돈을 마련했나?
그러면 이 대목에서 2조 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금호가 어떻게 6조 원을 마련했는지가 궁금해질 겁니다.
금호는 이미 말한 대로 자체 자금으로 2조5000억 원을 조달했습니다. 그리고 계열사들의 차입을 통해 1조 원대의 돈을 마련했죠.
나머지 돈은 투자자들에게 빌렸습니다. 투자자들에게는 경영을 잘 해서 3년 후 주당 3만4000원의 주가를 보장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습니다. 만약에 3년 후인 2009년 말까지 주가가 그 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차액을 돈으로 주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처럼 투자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는 행위를 ‘풋백옵션’이라고 하죠. 이렇게까지 말하니 투자자들도 돈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당시 대우건설 주가가 1만260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돌이켜 보면 대단히 무리한 약속이었습니다. 사실 무리한 걸로 따지면 인수 가격부터가 그랬습니다. 금호가 대우건설을 사고 지불한 6조4255억 원을 주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2만6000원 정도가 됩니다. 이는 당시 주가의 2배가 넘는 돈입니다.
대우건설 인수가 결정되는 날 금호 그룹 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인 것은 시장이 금호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였습니다. 당시 누군가는 대우건설의 적정 가격을 3조 원 내외라고 평가했고, 그 정도가 합당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지름신이 내린 오너는 시장의 평가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었고 그게 결국 재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난해 7월 경영 일선 퇴진을 밝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3. 금호아시아나, 무리한 약속의 대가
코스피가 2000을 넘으며 주가가 거침없이 오르던 2007년 말 대우건설 주가는 한 때 3만 원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주가는 여지없이 내리막을 타게 됐죠.
투자자들과 약속한 시간인 2009년말이 다가왔지만 대우건설 주가는 계속 1만 원대 초반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럴수록 금호그룹에 대한 불안은 커져갔고 ‘금호가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는 루머가 수시로 시장에 돌았습니다. 주가는 점점 더 내려갔고 계열사들의 영업에도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다가오면서 금호가 투자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면 4조 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습니다. 물론 금호는 그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었죠. 결국 약속한 시간을 6개월 남기고 금호는 대우건설을 다시 토해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경기침체를 맞은 재계에는 대우건설을 사들일 만한 기업이 없었습니다. 결국 자베즈 파트너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펀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죠. 하지만 자베즈는 예치금을 차일피일 미루며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베즈의 이런 태도에 대해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인수 능력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펀드 속성 상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들여 인수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돼 약속한 돈을 낼 수 없었다는 분석이었죠. 결국 금호는 매각을 중단하고 마지막 남은 길인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선택했습니다.

<대우건설 최근 3년 주가 그래프>
4. 워크아웃 방안을 둘러싼 충돌
워크아웃은 기업이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빌려준 채권자과 돈을 빌린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기업이 망하면 채권자도 어차피 돈을 못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방법이죠.
일반적으로 워크아웃은 기업 오너가 가진 돈을 모두 내 놓으면, 금융회사에서 모자란 금액을 일부 탕감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동시에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바꾸고(출자전환) 회생에 필요한 돈을 추가로 빌려주기도 하죠.
이번에 워크아웃 대상이 된 계열사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입니다. 금호산업은 대우건설 최대주주로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었고, 금호타이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자동차산업 타격 및 파업 등으로 코너에 몰린 처지였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 방식으로 그룹에서 책임을 지고 구조조정을 하기로 했죠.
1월 초 규정에 따라 채권단의 75%가 동의했고 워크아웃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방식으로 워크아웃을 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습니다.
금호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투자가들에게 주당 1만8000원에 대우건설 주식을 사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3만1500원은 줄 수 없다고 했죠. (약속한 금액은 애초 3만4000원이지만 배당 등을 통해 일부를 미리 받은 탓에 다소 줄었습니다) 대신 1만8000원과 3만1500원의 차이는 일부를 탕감하고 일부는 금호산업 주식으로 바꿔 워크아웃에 같이 참여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손해를 모두가 나눠서 부담하자는 제안인 셈입니다.
반면 투자자들은 손해를 부담할 수 없다면서 새로운 안을 제시했습니다. 2조2000억 원의 신규자금을 유치하는 대신 투자자들이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의 경영권을 가져가겠다는 제안이었죠. 돈을 새로 투입해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고 금호를 정상화하자는 제안인데 산업은행은 “현실성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금호도 “아시아나항공까지 내놓고 나면 그룹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며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다른 방안을 내놨습니다. 주당 1만8000원에 대우건설 주식을 사는 것 까지는 산업은행의 제안과 같지만 3만1500원과 1만8000원의 차액 중 금호산업 청산가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탕감하자는 것이죠. 우리은행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차액을 모두 받으려면 금호산업이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망한 걸로 간주하고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더군요. 이럴 경우 투자자들은 약 30% 손해를 보게 됩니다. 주식에 투자한 투자가들이 채권은행과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제안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다른 안이 나오고 각자 자신의 안을 고집하면서 좀처럼 워크아웃이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여기에 오너의 도덕적 해이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금호산업은 워크아웃 신청 직전 아시아나항공 주식 12.7%를 952억 원에 금호석유화학에 팔았습니다. 이를 통해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가 됐죠. 아시아나항공은 포기할 수 없다는 오너의 고집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연히 금호산업 채권단은 뿔이 났습니다. 그대로 있었으면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로서 좀 더 높은 기업 가치를 지닐 수 있는데, 아시아나 항공의 대주주가 금호석유화학으로 바뀐 까닭에 그 만큼 기업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대우건설 투자자들도 금호산업에 받을 게 있는 만큼 펄펄 뛰고 있습니다.
952억 원은 주가대로 받은 돈이지만 일반적으로 대주주가 바뀌는 거래를 할 때는 주가대로 파는 게 아니라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 파는 게 보통입니다. 채권단과 대우건설 투자자들은 “금호석유화학이 가져간 지분을 원상복구하거나 아니면 나머지 아시아나 지분을 모두 사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한다”면서 금호그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5. 금호아시아나, 어떻게 되나
워크아웃이 시작되면서 지금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실사단이 구성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재무, 자산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 기업을 계속 유지하는 게 좋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경영을 정상화시킬지를 담은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채권단과 기업이 경영정상화 약정을 맺게 되죠. 약정에는 출자전환, 자산매각 등 아까 설명한 워크아웃 방안이 모두 담깁니다.
그렇지만 기업을 유지할 가치가 별로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다음 순서는 법정관리입니다. 법정관리마저 잘못되면 파산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직면한 문제는 가능한 빨리 경영정상화방안을 도출하는 겁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호산업은 자본금이 바닥나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계약에 따라 자동으로 풋백옵션이 무담보채권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빚이 급증하면서 자본잠식 상태가 된 거죠.
자본잠식 상태가 되면 거래소의 상장폐지 사유가 됩니다. 상장이 폐지되면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공멸(公滅)하게 됩니다. 상장폐지를 막으려면 사업보고서에 자본잠식 상태를 해소할 구체적인 계획을 첨부해야 하죠. 그러려면 경영정상화 방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딴 소리를 하다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금호아시아나 사태가 알려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무리한 욕심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죠. 이번 사태를 통해 이런 교훈을 배웠다는 사실을 채권단, 대우건설 투자자, 금호그룹 오너들이 함께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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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예~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