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종사자도 '유리알 지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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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정부는 4월부터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과 예식장, 학원 등 현금거래가 많은 업종에 대해서는 30만 원 이상 거래할 때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들 업종 사업자들은 소비자가 요청하지 않아도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합니다. 발급하지 않은 사실을 신고하면 미발급 금액의 20%(최대 300만 원)을 포상금으로 주는 세(稅)파라치 제도도 도입했죠. 대신 사업자는 과태료로 50%를 내야 합니다.
그러면 한 달 만에 어떤 것들이 바뀌었을까요? 정말 전문직 사업자들은 모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있을까요? 진짜 전문직 탈세가 사라졌다고 봐도 될까요? 그래서 저희는 한 달 동안의 성과를 점검해보기로 했습니다.
(전문직 현금영수증 의무화의 배경에 대해서는 3월 25일에 올린 포스트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는 http://news.donga.com/3/all/20100506/28119644/1 및 http://news.donga.com/3/all/20100506/28141455/1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 적발 사례
먼저 과태료를 납부한 첫 번째 케이스를 들여다볼까요?
4월 초 대전의 S예식장에서는 하객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결혼식 직후 신랑과 신부 측 혼주는 각자 받은 축의금을 합쳐 결혼식 비용 1500만 원을 냈죠. 예식장 측은 전액을 현금으로 받았지만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신부 측 관계자 A 씨는 예식장이 지난달부터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 업종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음 날 사전견적서를 첨부해 관할 세무서에 신고했죠.
세무서는 현지조사를 거쳐 지난달 23일 예식장 측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예식장은 소명을 포기하고 자진납부를 선택한 뒤 지난달 말 600만 원의 과태료를 냈죠. 과태료는 원래 미발급 금액의 50%인 750만 원이지만 자진 납부했기 때문에 10%포인트(150만 원)을 깎아준 것입니다. 국세청은 조만간 A 씨에게 신고 포상금으로 300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국세청에 따르면 이 예식장 외에도 4월 한 달 동안 50여 건의 신고가 더 들어왔다고 합니다. 신고 건수는 부동산이 20건으로 가장 많았고 병원 15건, 예식장 5건 순이었다고 합니다. 병원에는 종합병원도 포함돼 있었다고 하네요.
나. 전전긍긍하는 전문직들
어떤 분은 50건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어떻게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들어봤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인 만큼 어느 정도 가감해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 A 씨 (소규모 로펌 소속)
“아직까지는 10명 중 7~8명은 현금으로 결제한다. 그래도 과거보다 신용카드 사용비율이 늘어난 편이다. 손이 많이 안 가는 사건의 경우 착수금이 500만 원이면 부가가치세 10%를 합쳐 550만 원을 받는다. 예전에는 현금으로 받으면서 약간 깎아줄 수 있었다. 고객들도 그걸 요구했고…. 하지만 지금은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해 깎아줄 수가 없다. 깎아줄 수가 없다고 하니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고객이 늘었다. 사실 변호사 업계도 요즘에는 경쟁이 치열해 못 이기는 첫 깎아줄 때도 있긴 하다. 55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 깎아줄 때도 있는데, 그래도 현금영수증은 발행해야 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손해다.”
변호사 B 씨 (대형 로펌 소속)
“우리는 큰 회사라 회계파트에서 관련 사안을 전담하고 있다. 그래서 피부에 닿게 바뀐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세파라치와 신고포상제를 도입한 것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무신고 소득이 확 줄어들지 않을까. 영향은 개인변호사 사무실과 형사사건에 집중될 것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전관예우를 활용하기 위해 검찰 출신 변호사를 거액을 주고 선임서 없이 선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을 가져다주고 일정액을 받는 브로커들도 위축될 걸로 본다.”
서울시내 예식장 매니저 C 씨
“예식장에선 축의금으로 바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금 결제가 많다. 의무화 시행 전에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현금영수증을 끊어줬다. 제도가 시행되긴 했지만 아직 현금영수증 발급 안하는 대신 할인을 해주는 관행이 약간은 남아 있다. 먼저 ”현금으로 낼 테니 깎아 달라“고 말하는 손님도 있다. 서로 좋기 때문에 하긴 하지만 할인은 할인대로 받고 신고해서 포상금도 받으려는 사람이 있을까봐 찜찜하긴 하다. 일부 고급 예식장들은 아예 현금 할인 없앤 곳도 있다고 하더라. 점차 현금 할인이 없어지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지만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결혼한 D 씨
“지난달에 서울의 한 전통 혼례식장에서 결혼을 했다. 1200만 원을 현금으로 계산하면서 현금영수증을 받지 않는 대신 할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보통 5% 정도 할인해 주는 게 관행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식장에서는 신고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면서 거절하더라. 신고 안 한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어서 결국 정가를 내고 현금영수증을 받았다.”
장례식장 관계자 E 씨
“관례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보편화 돼 있는데 갑자기 시행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너무 갑작스런 조치라 장례식장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기존에 현금으로 했던 분들도 다시 찾아와서 현금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규모가 큰 장례식장은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있지만 영세 업체들은 경영이 어렵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눈치만 보고 있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면 세금이 10~20%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1년 정도 유예기간을 주었으면 했는데 안 주더라.”
치과의사 F 씨
“큰 병원은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플란트 몇 개해서 1200만~1300만 원이 나오면 1000만 원 해줄게 현금으로 해주라 이런 식이었다. 명동이나 강남의 잘나가는 대형 병원이 그런 경우가 많았다. 이번 조치도 편법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30만 원 미만으로 쪼개서 여러 번 결제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도 상당부분 탈세방지에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강남 병원들도 그렇고 일선 의사들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 시행 초기에 걸리면 ‘시범케이스’로 찍힐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다.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얻은 것
그럼 실제로 현금영수증 의무화는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요?
국세청은 최근 현금영수증 의무 대상 업종의 현금영수증 발급액에 대해 샘플 조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죠. 작년 4월 대비 현금영수증 발급액이 50% 늘어난 걸로 나온 거죠. 인플레이션과 현금영수증 제도 확산 등으로 해당 업종의 현금영수증 발급액이 매년 10%씩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추가로 늘어난 40%는 현금영수증 의무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샘플 조사 결과가 믿을 만 하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계산을 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현금영수증 의무화 업종 사업자 23만 명이 발행한 현금영수증은 7조5000억 원이었습니다. 올해 그보다 50% 정도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2조8125억 원 정도 늘어나는 셈입니다. (지난해 발행액이 1~12월까지고 올해는 제도를 4월부터 시행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금영수증 의무화 대상은 4월부터 제공한 서비스에만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의 경우 3월에 재판에서 변호를 하고 이겨서 4월에 성공보수를 받는 경우는 해당이 안 됩니다. 전문직들의 서비스가 대개 기간이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4월보다는 5월에, 5월보다는 6월에 조금 더 늘어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죠. 그래서 국세청은 올해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노출되는 세금이 최소한 3조 원은 될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수(稅收)는 어느 정도 늘어날까요? 몇몇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용카드 사용액이 1원 늘어날 때마다 걷는 세금은 0.1원 정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증세 없이 3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는 셈입니다. 이는 지난 한 해 봉급생활자 30만 명이 낸 근로소득세와 맞먹는 금액입니다. 고소득 자영업자 23만 명이 봉급생활자 30만 명 분의 세금을 더 내는 거죠.
라. 현금영수증 의무화 어떻게 대처하나
학원 업계도 이번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큰 타격을 받은 업종입니다. 그러다보니 각종 편법도 생겨나고 있다고 하네요.
한 학원 관계자가 전해준 방법은 이렇습니다. 이 학원은 중학생 종합반에 대해 한 달에 31만 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골일 경우에는 합의하에 2만 원 정도 깎아주면서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양 측이 합의한 거래금액이 29만 원인만큼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죠.
학원가에는 세파라치 식별법도 나돌고 있습니다. 자녀 2명분의 학원비를 한꺼번에 결제하거나 학원비 3개월 치를 한꺼번에 내는 방법으로 결제액을 30만 원 이상으로 높이면서 현금영수증을 요구하지 않으면 수상하다는 식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소 중에는 아예 현금영수증 가맹점에서 탈퇴하는 사업자도 적지 않습니다. 작년 신고 수입이 2400만 원 미만이면 현금영수증 의무화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거죠. 현금영수증 가맹점에서 탈퇴하면 영수증 발급을 최소화하면서 계속 연간 수입을 2400만 원 미만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 얘기를 듣는데 좀 얄밉긴 하더군요.
그런가하면 현금영수증을 제대로 발급하면서도 좌불안석인 전문직 종사자도 적지 않습니다. 소득이 제대로 노출되면 갑자기 늘어난 소득에 대해 세무서에서 관심을 갖고 세무조사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거죠.
한의사 한 명은 “계산해보니 4월 한 달 동안에만 전년 동월 대비 1000만 원은 더 수입이 노출된 걸로 나오더라. 지난해 신고한 연간소득이 2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1억 원 이상 늘어날 것 같다. 세무서에서 소득이 급증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마. 국세청 “유흥업소도 동작 그만”
국세청은 현금영수증 의무화의 효과가 기대 이상인 것으로 나오자 이르면 하반기부터 대상을 유흥업소, 노무사, 산후조리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유흥업소 중에는 룸살롱,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이 해당됩니다. 룸살롱과 단란주점의 소득탈루율(전체 소득 중에서 신고하지 않은 소득 비율)이 70~9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좀 늦었다는 감도 있습니다.
물론 유흥업소에서 현금을 주는 사람 중 상당수가 정체를 가리려고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면 고객이 신분노출을 우려해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할 경우에도 국세청 지정코드(010-000-1234)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합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금으로 계산한다고 할인을 해줬다가 영수증 미발급으로 적발돼 과태료와 누락된 세금을 물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이라면서 “유흥업소 입장에서는 신분노출을 우려해 발급을 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고해서 포상금을 타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발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더군요.
‘유리알 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의 처지에서 보면 현금영수증 의무화는 어찌 보면 당연한 처방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상류층인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서글픈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경제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금은 어떻게든 적게 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이번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것 하나만은 느꼈으면 합니다. 사회의 정당한 규율을 따르지 않을 때는, 결국 타율에 의해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죠.
‘왜 우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냐’고 말하기 전에 ‘왜 사람들은 전문직 종사자 현금영수증 의무화를 환영할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와 있지 않을까요.





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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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 정말 공감합니다-스스로 원칙을 지키지 않고 편법을 통해 응당 납부해야 할 세금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사회적 부를 감소시킨다면, 타율과 규제를 통해 윽박질러서라도 하게 만들 수밖에 없죠.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했어야 하는 것이다...지금껏 세금을 잘도 피하고 좋은 세상 살았던줄 알아야지...자영업자도 마찮가지다...1년 소득세는 200만원쯤 내는데 돈써는 것을 보면 봉급자의 3-5배정도 쓴다...그런데도 집사고 토지사고 잘만 하더군...이게 현실이다....
예.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