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도 자유무역협정의 뒷 얘기
무역
peacechaos(2009-08-11 18:11:41) | 원문보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아난드 샤르마 인도 상공장관이 지난 주말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에 공식 서명했습니다. CEPA는 자유무역협정(FTA)의 다른 이름이죠. 언론에도 많이 등장해 한-인도 CEPA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은 많이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는 언론에 안 나온 뒷얘기를 위주로 써보려고 합니다.
1. 왜 인도는 한국과 CEPA를 체결했나?
주변에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인도와 CEPA를 맺으면 인구 12억 명의 세계 4위 소비시장을 유리한 위치에서 공략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수출품이 대부분 관세가 높은 공산품이라 관세가 면제되면 그 만큼 가격 경쟁력이 생기게 됩니다. 반면 인도는 외관상으로는 얻은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인도가 한국에 수출하는 품목은 자원, 사료원료 등인데 한국이 필요해서 들여오는 만큼 원래부터도 관세가 높지는 않습니다. 또 농축수산물도 대부분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굳이 얻은 게 있다면 인력 분야의 개방입니다. 인도의 정보기술(IT) 전문가, 영어보조교사 등 163개 전문직 인력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취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가 미국 대신 한국을 택할까요? 한국의 학부모들이 인도 출신 영어보조교사를 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도와 한국의 의견이 좀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밖에 제가 생각하는 이유도 하나 있습니다. 7일 샤르마 장관의 질의응답을 듣다가 문득 생각난 것인데, 양측의 동상이몽이 흥미로워서 칼럼으로도 썼습니다. (내용은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908110138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국은 인도를 ‘인구가 많은 자원 부국’ 정도로 생각하고 원자재를 수입해서 공산품을 만들어 팔 생각을 하는데 인도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스스로를 3차 산업인 ‘지식서비스 경제’로 생각하기 때문에 ‘공산품을 수입해 지식서비스를 세계에 판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죠. 한 마디로 한국이 광석을 수입해서 그걸로 컴퓨터를 만들어 인도에 팔면 인도는 그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를 공략한다고 보면 되겠네요.
2. 왜 개방 수준이 낮은가?
인도가 한국 제품에 대해 관세를 없애거나 줄이는 품목은 전체의 85%에 불과합니다. 한국과 미국, 한국과 EU가 99%의 관세를 없애거나 줄인 것에 비교하면 개방 수준이 상당히 낮은 편이죠.
개방 수준이 낮은 이유는 정부가 그렇게라도 일단 인도와 빨리 CEPA를 체결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협상 당국자들은 “일본과 인도가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가능한 빨리 체결해야 일본보다 우위를 조금이라도 차지할 수 있지 않겠냐”고 설명하더군요. (그래도 인도가 지금까지 체결한 자유무역 협정 중에는 가장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인도가 스스로 완성차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존중해 완성차 관세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자동차 부품 관세도 1~5%로 낮추는 선에서 합의를 봤죠. 양측 모두 민감한 농축수산물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한도 협상이 쉬웠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3. 이건 왜 들어갔나?
뒷얘기가 재미있는 품목도 몇 개 있습니다.
망고는 8년 내에 현재 30%인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인도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것이죠. 문제는 망고가 현재 검역 과정에서 걸려 한국에 안 들어오고 있다는 겁니다. 인도가 현재 수입되지도 않는 망고의 관세 인하를 강하게 요구한 것을 협상 당국자들은 ‘대내협상용’이라고 해석합니다. 인도에 돌아가서 “인도의 자랑인 맛 좋은 망고를 한국에 수출하게 됐다”고 하면 국민들이 끄덕끄덕 할 거라는 얘기죠.
카레의 원료가 되는 강황도 비슷한 의도에서 관세율 8%를 8년에 안에 5%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카레 원조’의 자부심을 감안해 농산물 중 예외적으로 한국이 받아들였다고 하네요. 상대국의 자부심을 존중해 주는 대신 하나 더 챙기자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인도가 끝까지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 개방입니다. 미국의 의료업체들이 진단을 맡길 정도로 인도의 의료 인력은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의사 중 상당수가 인도 출신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내의 강한 반발과 국민들의 우려를 감안해 거절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또 한국에 영어교사를 보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어민이 아닐 경우 보조교사로만 활동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영어보조교사만 허용됐다고 하네요. 저도 인도에 몇 번 다녀왔지만 인도인들의 발음을 생각하니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
4.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사실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자유무역이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주는 혜택은 수입품 가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가 한국에 수출하는 제품이 거의 원료나 중간재이기 때문에 그런 품목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 몇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카레 가격이 내려간다. (판매가에서 강황이 차지하는 비중은 잘 모르지만 아주 약간은 가격인하 요인이 생기지 않을까요)
△망고를 싸게 먹을 수 있다. (물론 망고가 검역을 통과했을 때의 얘깁니다)
△국산 고기 가격이 떨어진다. (사료원료에 매기는 관세가 낮춰지기 때문이죠)
△옷 가격이 떨어진다. (일부 면사 등도 관세가 내려갑니다)
하지만 가격 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면
△ (인도 사람이 많아지면서) 인도 음식점이 많아진다.
△ 서울에 힌두교 사원이 생긴다. (관광 명소가 될 수도 있겠네요)
△ 싱가포르의 리틀인디아 같은 인도 거리가 생긴다.
△ 마찬가지로 피시 헤드 커리 같은 퓨전 요리가 생길 수도 있구요. (침 넘어갑니다. 꼴깍)
△ 한-인도 합작으로 아밋타 밧찬과 설경구가 나오는 영화가 만들어져 영화관에 걸린다. (합작 영화는 스크린쿼터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하네요)
물론 인종 갈등이 심하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걸 극복하는 게 앞으로 우리의 과제겠죠.



